샘 레이미부터 MCU까지, 세 번의 스파이더맨은 매번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습니다. 반복강박과 책임의 윤리로 이 구조를 해석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스파이더맨의 상실에 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샘 레이미의 벤 삼촌, 어메이징 시리즈의 그웬 스테이시, MCU의 메이 숙모. 세 개의 서로 다른 세계, 세 명의 다른 배우가 연기한 세 명의 피터 파커가 놀랍도록 닮은 구조의 상실을 겪는다는 걸 눈치채신 적 있으신가요. 조금만 더 빨랐다면, 조금만 더 강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이 전부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서, 자신이 지키려 했던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난다는 공통점. 20년 넘게 세 번이나 이 구조가 반복됐다는 걸 깨닫고 나니, 이건 우연한 클리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랜드 뉴 데이에서 진 그레이가 피터에게 던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어. 그 사람들은 떠났고, 행복했던 시절은 끝났어"라는 대사는 단순한 협박이 아닙니다. 이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가 세 번의 영화 시리즈에 걸쳐 집요하게 반복해온 하나의 질문을 정확히 요약한 문장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이 글은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노 웨이 홈, 브랜드 뉴 데이의 핵심 장면과 결말을 다룹니다.
먼저 이 반복이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에서 벤 삼촌은 피터가 레슬링 상금을 위해 방관한 강도에게 살해당합니다. 이 죽음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원작의 상징적 문장을 낳았고, 이후 모든 스파이더맨 서사의 도덕적 기초가 되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는 연인 그웬 스테이시가 일렉트로와의 전투 도중 피터의 손이 닿기 직전에 추락사합니다. 이 장면은 원작 코믹스의 유명한 '더 나이트 그웬 스테이시 다이드'를 각색한 것으로, 힘을 가진 자도 결국 모든 것을 구할 수는 없다는 잔인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MCU에서는 노 웨이 홈에서 메이 숙모가 그린 고블린에게 살해당하며, 그 순간 남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피터를 완전히 다른 방향, 곧 자기 소거라는 선택으로 이끕니다.
세 죽음 모두 공통된 구조를 가집니다. 피터가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혹은 힘을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그 순간에 늦었다는 것이죠.
죄책감이라는 엔진 — 이 반복의 구조
이 구조를 조금 더 뜯어보면, 세 가지 축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캐릭터 선택 구조. 세 명의 피터는 모두 상실 직후 같은 선택의 갈림길에 섭니다. 힘을 포기하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상실을 원동력 삼아 더 깊이 책임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인가? 매번 그들은 후자를 택합니다. 이것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를 다른 히어로와 구별 짓는 지점이 되죠. 토니 스타크의 영웅주의가 자존심과 속죄에서 출발한다면, 피터 파커의 영웅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죄책감에서 출발합니다.
갈등 구조. 세 시리즈 모두에서 진짜 대립은 빌런과의 물리적 전투가 아니라, '조금 더 빨랐다면'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브랜드 뉴 데이에서 진 그레이가 정확히 이 표현을 사용해 피터를 공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제작진은 이 대사를 통해 관객이 세 세계의 스파이더맨이 겪은 비극을 하나의 문장으로 겹쳐 보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상징. 세 죽음 모두 '손이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라는 시각적 상징을 공유합니다. 벤 삼촌을 향해 달려가지만 늦고, 그웬을 향해 거미줄을 쏘지만 한 뼘 차이로 놓치고, 메이 숙모의 마지막 숨을 붙잡지 못합니다. 이 거리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아무리 강한 힘을 가져도 메울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 한계를 뜻합니다.
반복강박과 책임의 윤리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을 이해하기 위해 그 장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서 재현하려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반복강박이라 부르죠.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는, 혹은 이 캐릭터를 계속해서 다시 쓰는 창작자들의 선택 자체는 이 개념을 서사 구조로 구현한 사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매번 다른 세계, 다른 얼굴로 같은 상실을 되풀이하는 것은 그 상실이 결코 완전히 애도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MCU가 이 반복을 스스로 자각하는 방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노 웨이 홈에서 세 세계의 피터 파커가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은, 서로 다른 시리즈에서 각자의 상실을 짊어진 세 인물이 처음으로 자신의 비극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가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에게 건네는 조언, 그리고 가필드의 피터가 뒤늦게 MJ를 구해내며 그웬을 구하지 못했던 과거를 스스로 다시 쓰는 장면은, 반복되는 상실이 단순한 서사적 클리셰가 아니라 캐릭터 자신에게도 자각된 패턴이라는 점을 텍스트 안에서 직접 드러냅니다. 새로운 영화인 <브랜드 뉴 데이>에서 진 그레이의 입을 빌려 이 패턴을 다시 한번 언어화하는 것은, 이 시리즈가 반복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 관점에서 보면 이 반복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피터는 매번 결과가 아니라 의무 자체를 위해 행동하는데요, 벤 삼촌의 죽음 이후 그는 결과를 계산해서 영웅이 된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자신이 해야 했던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에 반응합니다. 이는 공리주의적 계산, 즉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는가'라는 의무의 문제가 됩니다. 세 명의 피터가 매번 상실 이후 힘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이 책임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는, 그들에게 영웅됨이 선택이 아니라 이미 저버린 의무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같은 후회를 반복하는가
이 구조가 20년 넘게 세 번이나 다른 얼굴로 반복해서 만들어진 이유는, 관객 역시 이 감정을 낯설어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조금만 더 연락했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하는 후회는 히어로 영화 밖 우리의 일상에서도 익숙한 감정입니다. 우리는 종종 상실 이후에야 그 사람에게 쏟았어야 할 관심의 크기를 깨닫습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20년에 걸쳐 세 번이나 이 구조를 반복한다는 사실은, 이 감정이 한 번의 이야기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상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브랜드 뉴 데이에서 피터가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은 상실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다시 관계를 향해 손을 내미는 용기입니다. 그것이 세 번의 반복 끝에 이 캐릭터가 도달한 유일한 성숙이라면, 우리 각자에게도 같은 질문이 남습니다. 상실 이후, 다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는지.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