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0만 관객 《왕과 사는 남자》 정의 분석. 500년 만의 집단 장례, 그리고 북미에서 상영관이 늘어나는 진짜 이유.

영화가 끝나고 한 댓글이 퍼졌습니다.
"500년 만에 전 국민이 단종의 장례를 치른 것 같다."
장항준 감독은 이 댓글을 보고 말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게 동의가 되더라고요.
패배자는 나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감독과 유해진은 대담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단종은 정치적으로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패배와 나약함은 다릅니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가 나약한 사람입니까?
"세종대왕의 손자, 문종대왕의 아들이 만약에 왕으로서 끝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는 형편없고 나약한 왕이었을까?"
아닙니다.
장항준 감독은 영화를 위해 사전 조사를 하면서 알게됐다고 합니다.
12살의 단종은 아버지 문종의 장례에서 신하들이 겨울에 돌을 캐내야 한다고 하자 홀로 반대했습니다.
"백성들이 겨울에 돌을 캐내는 건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12살짜리가 한 말입니다.
그는 나약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숙부의 칼을 당해낼 힘이 없었을 뿐입니다.
힘 없는 정의는 무기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유해진이 대담에서 꺼낸 말입니다.
이 한 문장이 이 영화에 대해 진한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한명회와 수양대군에게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폭력이었고,
지금도 우리는 분노합니다.
단종에게는 정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억울하고 슬픈 죽음을 당했고,
우리는 아직까지 분노합니다.
그렇다면 엄흥도는 오늘날 왜 우리의 마음을 울릴까요?
힘도 없고 정의만 있는 평범한 촌부가 목숨을 걸고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그는 비록 그의 현생에서는 이기지 못했지만,
역사는 그를 기억했습니다.

500년 만의 집단 장례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세조의 무덤에 몰려갔습니다.
별점 1점 테러를 남겼습니다.
또한, 단종과 생이별 한 정순왕후를 합장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조선왕조실록 관련 책이 개봉 전 대비 3배 가까이 팔렸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영화 반응이 아닙니다.
한국인들은 이미 결말을 알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노루골 촌장(정봉이)이 웃길때도,
개인적으로는 초췌한 모습의 폐위된 소년 왕이 국을 먹으며 미소를 지을 때도,
그래서 단종이 가장 행복한 순간부터 이미 눈가에 눈물이 배더군요.
그리고 그 죽음을 함께 목격하면서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했습니다.
어릴적 역사책에서 보고 분노했지만 한켠에 두었던 애잔함을 다시 끄집어냅니다.
생각해보니 우리 백성은 500년 동안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지 못했더군요.
무도한 권력에 가슴을 치며 억울함과 원통함을 꾹꾹 눌렀더라구요.
마지막 장면에서 터져나오는 눈물은 꽤 오래된 원통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속절없이 눈물이 나오더군요.
알고있는 결말이라도 말이죠.

왜 북미에서 상영관이 늘어나는가
흥미로운 현상이 있습니다.
북미 개봉 2주 차에 범죄도시4의 북미 성적을 추월했습니다.
3주 차에는 서울의 봄과 극한직업의 기록을 넘었습니다.
상영관이 매주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한인 교포들만 보는 영화가 아닙니다.
지금 북미는 어떤 시대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국(ICE)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잡아갑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온 사람들이 체포되고, 쫓겨나고, 모욕당합니다.
권력 앞에서 법이 무력해지는 장면들을 매일 뉴스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극장에 들어와 한명회를 봤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유배 보내고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가는 권력자!
그리고 서슬퍼런 그의 위압에도 시신을 수습한 평범한 남자를 봤습니다.
569년 전 조선의 이야기가 2026년 북미의 현실과 겹쳤습니다.
생각컨데, 억압 앞에 쌓인 분노와 슬픔이 단종의 죽음 앞에서 출구를 찾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권력자들과 국제적인 힘겨루기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연대의식이 무의식 속에서 눈물을 끌어당긴 것이라면 너무 앞서간 생각일까요?
정의는 이긴 사람의 기록이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수양대군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세조도 보이지 않습니다. 의도적입니다.
힘을 가진 자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대신 카메라는 쓸쓸히 떠다니는 단종의 유해 옆에 남은 사람의 얼굴을 비춥니다.
역사는 승자가 쓰지만 기억은 다릅니다.
세조의 이름은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무덤엔 별점 1점이 쌓입니다.
관광지에 별점 1점이라니, 사실 벌점이죠.
엄흥도의 이름은 실록에 두 줄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무덤은 단종 곁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울었던 진짜 이유
제작사 임은정 대표는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고요하게 울음을 참아내던 풍경을 잊지 못한다고.
모두가 잊지 말자고 하지만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너무 쉽게 비극을 흘려보내는 것 같다고.
그리고 참사는 참 여러 번 자주 일어났습니다.
이태원,
무안공항......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 앞에서 울었습니다.
단종 때문만이 아닙니다.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위해.
기억되지 못한 모든 이름들을 위해.
그리고 여전히 반복되는 구조 앞에서 그래도 시신을 수습하기로 선택하는 사람들을 위해.
엄홍도를 연기한 유해진이 말합니다.
"힘 없는 정의는 무기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엄흥도는 권력에 있어서는 무기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역사 앞에서 옳은 행동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결국 무기력했지만 조용히 강하게 행동했던 그를 기억했습니다.
이 영화가 묻습니다.
지금 당신 곁에서 조용히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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