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0억 달러를 넘긴 슈퍼 마리오 갤럭시 무비. 왕국의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다 지쳐버리는 마리오 삼총사의 모습으로, 이 영화가 그려낸 영웅의 피로를 짚어봅니다.

스포일러 주의: 이 글은 영화 초반부 전개를 다룹니다.
전 세계 흥행 10억 달러를 넘긴 이 애니메이션은, 언뜻 보면 실패할 이유가 없는 조합이다. 2023년 전편이 이미 흥행에 성공했고, 닌텐도라는 세계적인 IP에 일루미네이션의 애니메이션 완성도가 더해졌다. 전편의 개봉 주말 흥행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던 만큼, 시장의 기대 자체가 상당히 높았던 작품이다. 그런데 막상 뜯어보면 이 영화가 그리는 마리오와 루이지는 화려한 영웅이라기보다, 매일 처리해야 할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에 더 가깝다.
왕국의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은 배관공들
영화는 마리오와 루이지가 버섯왕국에서 피치 공주를 돕고, 붙잡힌 쿠파를 돌보고, 주민들의 온갖 고민을 해결해주는 일상으로 시작합니다. 새로운 동료 요시가 합류하고, 어느 날 피치는 왕국을 부탁한다는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사라집니다.
이 도입부 설정 자체가 눈여겨볼 만합니다. 붙잡힌 쿠파를 '돌본다'는 표현이 의미심장한데, 오랫동안 물리쳐야 할 대상이었던 악역이 이제는 관리와 보살핌의 대상으로 바뀌어 있다는 뜻입니다. 전작에서 쿠파를 무찌르는 것으로 끝났던 이야기가, 이번 영화에서는 무찌른 다음의 뒤치다꺼리까지 떠안는 데서 다시 시작하는 셈입니다.
남겨진 삼총사는 슈퍼 마리오 게임 특유의 필드맵을 그대로 옮겨온 지도 위에서, 붉은 신호가 뜨는 곳마다 출동합니다. 키노피오들을 괴롭히는 굼바와 해머브라더스를 소탕하고, 아이스크림을 잃어버려 우는 키노피오를 위해 아이스 마리오로 변신해 대왕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고, 잠자리까지 정리해줍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왕국 곳곳을 뛰어다닌 끝에, 셋 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립니다.
혹실드가 말한 관리된 마음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혹실드는 어떤 노동은 단순히 몸을 쓰는 게 아니라 감정 자체를 관리하고 연출해야 한다는 걸 밝혀낸 사람입니다. 그는 이걸 감정노동이라 불렀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아야 하는 승무원의 사례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친절과 쾌활함 뒤에는 그 감정을 유지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과 피로가 숨어 있다는 걸 보여준 연구였습니다.
혹실드가 특히 짚었던 부분은, 이 노동이 몸이 아니라 마음을 도구로 쓴다는 데 있습니다. 팔다리가 아무리 지쳐도 회복할 시간을 주면 되지만, 계속 밝은 얼굴을 연기해야 하는 감정은 쉬는 시간에도 완전히 꺼지지 않습니다. 손님 앞에서 웃던 얼굴의 근육이, 퇴근 후에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마리오와 루이지가 하루 종일 키노피오들 앞에서 유지해야 했던 그 명랑함도, 이런 종류의 소진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마리오와 루이지가 왕국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정확히 이 노동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굼바를 물리치는 액션은 화려하게 그려지지만, 우는 키노피오를 달래려고 즉석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는 장면은 사실 감정을 다루는 노동입니다. 상대의 실망을 웃음으로 바꿔줘야 하는 역할이죠. 영화가 이 모든 임무를 마친 두 사람을 녹초가 된 모습으로 그린다는 것 자체가, 이 서비스가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걸 은연중에 인정하는 셈입니다. 화면 속에서는 유쾌한 모험처럼 편집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는 계속 웃어야 하고 계속 도와야 하는 존재의 소진이 있습니다.
쿠파의 부탁, 쿠파 주니어의 침공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흥미로운 구도가 등장합니다. 피치의 생일을 둘러싼 사건에 이어, 다름 아닌 쿠파가 무언가를 부탁해오고, 그 뒤를 이어 쿠파 주니어의 침공이 벌어지는 흐름입니다. 오랫동안 이 시리즈의 절대 악역이었던 쿠파가 침공이 아니라 부탁이라는 형태로 먼저 등장하고, 정작 침공이라는 행위는 다음 세대인 쿠파 주니어의 몫으로 넘어간다는 배치가 눈에 띕니다.
이 구도를 뒤집어보면, 악역이라는 자리조차 세습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아버지 세대의 악당이 어떤 이유로든 한발 물러난 자리를, 자식 세대가 그대로 이어받아 침공자의 역할을 반복하는 겁니다. 영웅의 자리에서 마리오와 루이지가 지친 몸을 이끌고 계속 왕국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악역의 자리에서도 누군가는 계속 그 역할을 물려받아야 하는 셈입니다. 선한 쪽이든 악한 쪽이든, 정해진 역할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이 구도가 은근히 보여줍니다.
전편에서 쿠파는 피치를 향한 일방적이고 왜곡된 집착으로 그려졌던 인물입니다. 이번 영화에서 그가 부탁이라는 형태로 다시 등장한다는 건, 최소한 한 번은 그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정리됐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반면 쿠파 주니어는 아버지의 감정적 배경 없이 순수하게 침공자의 자리만을 물려받은 셈이라, 어쩌면 아버지보다 더 순수한 형태의 악역으로 그려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기가 흐려진 채 역할만 남았을 때, 그 악역은 이전 세대보다 오히려 더 다루기 어려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원작 게임의 유산과 오마주
2007년 닌텐도 Wii로 출시된 원작 게임 슈퍼 마리오 갤럭시는 스핀 액션과 우주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스테이지, 수준급의 스토리로 시리즈 최고작 중 하나로 꼽혀온 작품입니다. 자유롭게 스테이지를 선택하고, 각 스테이지 안에서 여러 개의 스타를 모아 클리어한 뒤 다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방식이었죠. 이번 영화가 그 이름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로잘리나와 쿠파 주니어 같은 캐릭터를 실사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했다는 점도 원작 팬들에게는 반가운 지점일 겁니다. 예고편에서 마리오가 우주로 향하는 장면이 공개됐을 때부터, 전편의 지상 중심 모험과는 다른 스케일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로잘리나라는 캐릭터가 새롭게 합류한다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원작 게임에서 로잘리나는 우주를 떠도는 신비로운 존재이자, 스스로도 오래전 가족을 잃고 코스모 요정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돌봄이라는 주제가 이 캐릭터를 통해 한 번 더 반복되는 셈인데, 마리오 일행의 지상에서의 돌봄 노동과 로잘리나의 우주에서의 돌봄이 어떻게 서로 다른 무게로 그려질지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유쾌함 뒤에 남는 질문
이 영화를 단순한 가족 오락물로만 보면 이 피로의 디테일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 장면들에 공을 들여 그렸다는 건, 제작진이 영웅이라는 자리에 따라붙는 소진을 의식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화려한 액션과 유쾌한 톤 아래, 계속 도와야 하고 계속 웃어야 하는 존재들의 지친 얼굴이 잠깐씩 비칩니다.
이런 디테일이 가족 애니메이션에 담기는 건 사실 드문 일이 아닙니다. 픽사의 여러 작품들도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을 위한 모험담이면서 동시에 어른 관객을 향한 다른 층위의 메시지를 함께 심어두곤 했습니다. 슈퍼 마리오 갤럭시 무비 역시 그 전통 위에 있는 셈인데, 다만 이번엔 그 메시지가 감정노동이라는 다소 현실적인 소재를 게임 캐릭터의 몸을 빌려 표현했다는 점이 조금 더 눈에 띕니다.
10억 달러 흥행이라는 숫자 뒤에서, 이 영화가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우주 모험을, 어른 관객에게는 조금 다른 종류의 공감을 건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매일 누군가를 돕고, 매일 웃는 얼굴을 유지해야 하는 삶에 지쳐본 사람이라면, 녹초가 된 마리오의 모습에서 낯설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 같습니다. 같은 극장 안에서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는 마법을 보고, 그 옆의 부모는 아이스크림을 다 만들고 난 뒤의 그 한숨을 보게 되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