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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남: 더 레드 개봉 전 분석: 시지프스는 취준생이었다

by 필름휴머니스트 2026. 9. 24.

근거 없는 자신감이 유일한 스펙인 취준생 석환이 죽으면 72시간 뒤 부활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9월 30일 개봉하는 부활남: 더 레드가 반복되는 실패와 부활을 다루는 방식을 짚어봅니다. 

 

부활남 더 레드
부활남 더 레드

취준생 석환의 스펙란에는 딱 하나가 적혀 있다. 근거 없는 자신감. 거듭된 면접 불합격에도 그는 다음 면접을 준비하고, 첫 월급을 타면 가족에게 꽃등심을 사주겠다는 소박한 꿈을 놓지 않는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깨닫는다. 자신이 죽어도 72시간 뒤면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9월 30일 개봉하는 《부활남: 더 레드》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구교환이 주연을 맡은 액션 블록버스터입니다. 백종열 감독이 연출했고, 신승호, 강기영, 김시아, 김성령이 출연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 감독이 결정되고 2022년 구교환의 캐스팅이 알려진 이후 몇 년에 걸쳐 준비되어 온 작품이기도 합니다. 공개된 시놉시스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미리 짚어봤습니다.

반복되는 실패, 반복되는 부활

원작 설정부터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취업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거절당하는 인물이, 이번엔 죽음이라는 훨씬 더 극단적인 형태의 좌절을 반복해서 겪는 능력을 얻습니다. 석환을 쫓는 초능력자 블랙(신승호)의 정신 조종 능력이 유일하게 통하지 않는 대상이 바로 석환이라는 설정도, 그가 이미 반복된 실패와 부활을 통해 웬만한 지배력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걸 암시합니다.

죽을수록 강해진다는 설정은 액션 장르에서 흔히 쓰이는 클리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이 설정을 취업 시장에서 밀려난 청년에게 부여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반복된 좌절을 견뎌내는 능력이 곧 반복된 죽음을 견뎌내는 능력으로 그대로 확장되는 구조니까요.

나무위키에 정리된 장르 태그만 봐도 이 작품의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액션, 스릴러, 느와르, 판타지, 코미디에 더해 '한국의 슈퍼히어로 영화'라는 분류까지 붙어 있습니다.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한국 오락 영화가 드물지 않은 시대이지만, 그 능력의 뿌리를 취업 준비생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처지에 심어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조금 다른 결을 노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부활남 구교환 포스터
부활남 구교환 포스터

카뮈가 봤다면 반가워했을 인물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 알베르 카뮈는 영원히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 인간의 조건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바위는 정상에 닿는 순간 다시 굴러떨어지고, 시지프스는 또다시 그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합니다. 카뮈는 이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 앞에서, 시지프스가 절망하는 대신 그 반복 자체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행복해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을 사는 것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죠.

석환의 처지가 이 신화와 묘하게 겹칩니다. 면접에서 떨어지고, 다시 이력서를 쓰고, 또 떨어지는 반복. 그리고 이제는 죽고, 72시간 뒤 다시 살아나고, 또 쫓기는 반복까지 더해집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 석환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태도로 그 반복을 버텨냅니다. 카뮈가 시지프스에게 요구했던 태도, 즉 부조리한 반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태도를, 석환은 취업 준비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형태로 먼저 실천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첫 월급으로 가족에게 꽃등심을 사주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계속 품고 있다는 설정도 이 맥락에서 다시 보게 됩니다. 거창한 성공이나 복수가 아니라, 지극히 작고 구체적인 목표를 반복되는 좌절 속에서도 놓지 않는 것. 카뮈가 시지프스를 두고 "정상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고 했던 말을 빌리면, 석환에게는 그 정상이 거대한 성공이 아니라 소박한 저녁 식사 한 끼였던 셈입니다. 이 작은 목표가 오히려 그를 더 끈질기게 만드는 힘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카뮈의 시지프스와 다른 지점도 있습니다. 시지프스의 형벌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영원히 반복되지만, 석환의 부활은 죽을수록 더 강해진다는 형태로 축적됩니다. 반복이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성장의 재료가 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부조리극보다는 조금 더 희망 쪽으로 기울어진 우화를 만들려는 것 같습니다. 부조리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지프스와 달리, 석환은 그 부조리를 자산으로 바꾸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어쩌면 이건 신화적 인간과 현실의 청년 세대가 부조리를 감당하는 방식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신화 속 인간은 반복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반복을 견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반복에서마저 무언가를 쌓아 올려야 한다는 압박이 있으니까요.

액션이 담아낼 정서

예고편과 시사회 반응을 보면, 이 영화는 도심 추격전과 카체이싱, 야구 배트를 활용한 타격감 있는 액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호텔 로비, 전통시장 골목, 성당처럼 일상적인 공간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초능력자들의 싸움이 우주나 이세계가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동네 골목에서 벌어진다는 뜻이니까요.

이런 공간 선택은 이 영화가 노리는 정서와도 맞닿아 있어 보입니다.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다루면서도, 그 무대를 철저히 현실적인 장소로 고정해두면 관객이 느끼는 거리감이 훨씬 줄어듭니다. 석환이 싸우는 곳이 낯선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지나다니는 골목이라면, 그가 짊어진 반복되는 위기 역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석환을 쫓는 블랙과의 관계를 두고 한 매체는 "멜로처럼 바라본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가 단순한 적대 관계를 넘어 서로에게 집착에 가까운 감정을 갖게 되는 구도로 그려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타인을 조종하는 초능력을 가진 블랙에게 유일하게 통하지 않는 상대가 석환이라는 설정 자체가, 그에게는 일종의 강박으로 작용할 법합니다.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를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건, 추적자 입장에서도 단순한 임무 이상의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이니까요.

여기에 얼떨결에 추격전에 휘말리는 직장인 친구 영하가 유쾌한 활력을 더하면서,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오락 액션의 리듬으로 풀어가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초능력자와 부활자의 대결이라는 다소 진지해질 수 있는 구도 사이에, 평범한 직장인이 끼어들어 카체이싱을 함께 겪는다는 설정은 관객이 이 세계에 발을 들이는 통로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추석 이후를 노리는 다크호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추석 연휴 당일이 아니라 연휴가 끝난 뒤인 9월 30일 개봉을 택했다는 겁니다. 암살자(들), 가능한 사랑, 타짜: 벨제붑의 노래 같은 무게감 있는 작품들이 연휴 기간 극장가를 채운 뒤, 그 열기가 이어지는 시점을 노린 전략으로 보입니다. 배급사 스스로도 이 시점을 "추석 연휴 이후 극장가에 출격"한다고 표현하며, 앞선 작품들과 정면 승부 대신 오락 액션이라는 차별화된 자리를 노리는 모양새입니다.

이 개봉 타이밍 자체가 석환이라는 캐릭터와 묘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정면 승부의 자리를 피해, 그 열기가 한풀 꺾인 뒤 조용히 등장해서 자기만의 존재감을 쌓아가는 전략. 정공법보다는 반 박자 늦게 들어가 끈질기게 버티는 쪽을 택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마케팅 전략조차 주인공의 생존 방식을 닮은 셈입니다.

원작 웹툰을 몰라도 볼 수 있는 독립된 이야기로 구성됐다는 점도 진입장벽을 낮추는 요소입니다. 신선한 부활 설정과 리드미컬한 액션을 앞세운 이 영화가, 무거운 시대극과 예술영화들 사이에서 얼마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합니다. 취업 준비라는 익숙한 좌절에서 출발해 초능력 액션으로 뻗어나가는 이 이야기가, 결국 어떤 결말로 석환의 반복을 완성시킬지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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